2006년 01월 18일
퀴니네(Quinine), 퀴닌 - 말라리아 치료제
신비한 약효를 가진 나무 껍질
전설에 따르면 말라리아에 걸린 유럽인 중에서 처음으로 그 병이 나은 사람은 스페인의 페루총독부인인 친촌백작부인이라고 한다. 전신에 오한이 일면서 부인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게 되자 비통에 잠긴 백작이 왕실 시의에게 부인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탄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638년 당시의 의사로서는 방혈(放血)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는데 그것은 환자를 더욱 쇠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시의는 현지 인디언들의 민간요법에 따라 안데스산맥 동쪽 비탈에 있는 어떤 나무껍질로 만든 약을 백작부인에게 복용시켰다. (위 사진이 그 나무껍질이다. cinchona라고 불리는 나무의 껍질 사진이다.)
아래에는 Cinchona에 대한 원문을 옮겨보았다.

Cinchona, or “Quinine Bark” is one of the rainforest's most famous plants. Legends say that the name cinchona comes from the Countess of Chinchon, the wife of a viceroy of Peru, who was cured in 1638 of a malarial type of fever by using the bark of the Cinchona tree. The Countess supposedly introduced it to European medicine in 1640, but botanists did not know the identity of the plant that is its source until 1737. Despite the fact that quinine and quinidine drugs were patented, Peru and Bolivia, where the discovery was made and from where the resources where extracted, did not share in the patents or resulting profits.
이렇게 해서 말라리아에 걸렸던 백작부인은 살아났다. 1640년대에 유럽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기적의 요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와는 관계없이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인 카를 린네는 그것을 믿은게 확실하다. 그래서 그는 그 백작부인을 낫게 한 이 나무를 백작부인의 이름을 따서 - 철자는 좀 다르지만 - 싱코나(cinchona, 기나나무)라고 불렀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는 이 기나나무에서 채취한다.)
그러나 기나나무를 유럽에 소개한 사람은 스페인의 예수회 수사들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16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선교를 시작했을 당시에 페루의 인디언에게서 그 열병 치료법을 배웠다. 선교사들은 약간의 견본을 본국에 보냈고 1650년경에는 정기적으로 기나피(기나나무의 껍질)를 보내게 되었다.
다년간 사람들은 그 무서운 열병의 원인을 열심히 찾았었다. 유사이래 말라리아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질병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말라리아가 늪이나 습지대에서 올라오는 유독한 수증기로 전염된다고 여겨져 "나쁜 공기"라는 뜻인 말라리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880년, 프랑스의 과학자 샤를 라브랑은 이 질병의 특징인 심한 열과 오한이 전세계에 퍼져 있는 여러 종의 기생충 때문에 발생하여 말라리아모기의 암놈을 매개로 이사람에서 저사람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라리아(학질) 모기. 다른 모기와는 달리 꽁무니를 위로 들고 있는게 특징적이다.)
그런 살인마 같은 질병에 대한 요법은 마땅히 환영받아야 했겠지만 개신교도인 17세기 유럽인 대부분은 "예수회 수사들의 기나피"는 구교도의 음모라며 배척했다. 런던에서는 폭도들이 거리를 메웠으며, 짓이긴 기나피는 개신교를 몰아내려는 구교도의 책략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예수회 수사들이 직접 나서서 국왕을 독살하려고 모의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편 박학한 의원(醫員)들은 민간 요법에 불과하다고 코웃음을 쳤다.

예수회 수사들에 대한 편견의 한 좋은 예가 청교도였던 영국의 통치자 올리버 크롬웰인데 그는 끊임없이 재발하는 말라리아에 평생을 시달리면서도 그가 말한 이른바 "악마의 분말"을 먹기를 거절한 채 끝내 죽고 말았다.
(좌측 사진,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화)
그러나 불과 20년 뒤 속칭 "즐거운 국왕(Merry Monarch)"이라고 불렸던 영국왕 찰스 2세는 당시 런던 사교계의 돌팔이 의사 로버트 톨보를 서슴없이 불러들였다. 그는 말라리아 요법 때문에 부자들 사이에서 유명했었다. 교활한 톨보는 비록 공개석상에서는 예수회 수사들을 업신여기곤 했지만 자기 환자들에게 남모르게 예수회 수사들이 기나피로 만든 쓰디쓴 조제약을 주었던 것이다.
톨보는 말라리아에 걸린 국왕을 고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 정식 의사들을 질리게 만들면서 - 그 공으로 왕명에 의해 기사 작위까지 받고 그 이름 높은 왕립 내과의사회 회원이 되었다. 톨보는 1679년에는 루이 14세의 부름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가 말라리아에 걸렸던 것이다. 루이 14세는 톨보에게 왕자를 낫게 한 보답으로 종신연금을 주었고 그 처방을 가르쳐준 대가로 금화 3000크라운까지 주었다. 톨보가 죽을 때까지 그 처방을 비밀로 하기로 약속까지 하면서.
1681년 톨보가 죽자 루이 14세는 그 처방을 밝혔다. 그것은 장미꽃입 약 24g과 레몬 주스 약 57g, 기나피 가루를 진하게 우려내어 포도주에 탄 것이었다. 기나피에 함유된 알칼로이드(식물 염기)가 물에는 녹지 않고 알코올에만 용해되기 떄문에 술에 타야만 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처방이 공개되자 의사들은 이른바 예수회 수사들의 치료법이라고 일컬어지던 그 처방을 앞다투어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나피가 말라리아를 치료해 준다는 사실이 분명했지만 100년도 더 지난 1820년에 와서야 조세프 펠레티에르와 조세프 카방투라는 두 프랑스인 의사가 기나피 속의 알칼로이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것을 "나무껍질 중의 껍질" 이라는 뜻의 케추아어(원래 잉카문명권의 공용어. 케추아족을 비롯하여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의 인디오가 사용하는 언어로 남미 최대의 사용자수를 가진 독립어족)의 낱말인 quinquina를 따서 퀴니네라는 이름을 붙였다.
출처 - 리더스 다이제스트 "상식의 허실" & 구글 이미지
# by | 2006/01/18 00:47 | + 약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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